[美 FTA 비준] 한국 좌파정권이 시작한 FTA, 美 진보정권서 마무리 : 조선일보
: 2011.10.14 03:12
[민주당 등 한국 좌파, 정권 바뀌자 FTA 적극 반대로 돌아서]
2008년이 최대 위기 - 韓·美 모두 정권 바뀌고
쇠고기 협상 타결된 후 광우병 촛불 시위 불러
日·中의 견제 - 워싱턴 日대사관 직원들
"한국 못믿을 나라" 반대운동, 中도 전문가 보내 정보 탐색
자동차가 마지막 난관 - 관세 철폐기간 놓고 대립
협상장 문 박차고 나가기도… 한국서 추가 양보후 급물살
한·미 FTA 이행법안이 13일 오전(한국시각) 미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2007년 6월 협정문에 서명한 지 무려 4년3개월여 만에 미국 측의 비준절차가 끝났다. 그 사이 한국에선 진보 정권이 보수 정권으로 바뀌었고, 미국에선 정반대의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의회권력도 양국 모두에서 바뀌었다. 한국의 좌파정권(노무현)이 시작한 일을 미국의 진보정권(오바마)이 미국 측 비준절차를 마무리지은 모양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협상
한·미 FTA 체결을 위해 먼저 움직인 쪽은 한국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2003년 8월 '동시다발적 FTA 체결'을 국가전략으로 확정하고 상대국가를 물색했다. 결론은 미국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멀리 있는, 가장 큰 시장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WTO (세계무역기구) 국제국 법률자문관으로 있다가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스카우트된 김현종 변호사(현 삼성전자 해외법무 담당 사장)가 이런 얘기를 했다.
- ▲ 美하원의 미소… 미 의회에서 한·미 FTA 이행법안이 통과된 12일 존 베이너 하원의장(왼쪽)이 기자회견장에서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활짝 웃고 있다. 이날 베이너 의장은“법안 통과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말로 FTA 이행법안 통과를 축하했다. /AP 연합뉴스
협상의 공식 개시는 중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한국 대표단에게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며 반대운동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중국 정부도 협상 내용 파악을 위해 베이징에서 워싱턴으로 무역전문가들을 보냈다.
최종 타결은 2007년 4월 2일이었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기간 문제가 마지막 쟁점이었다. 협상장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거나 상대방이 제시한 문서를 면전에서 던져버리는 등 난산이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 달여 뒤인 5월 10일 미 의회선거에서 FTA 반대 입장인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해버렸다. 민주당은 신통상정책을 발표, 재협상을 요구했다.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강화 문제, 복제약 시판 문제가 핵심이었다. 결국 한달여 재협상 끝에 6월 30일 최종 서명했다.
◇한·미 양국의 정권 교체
몇 달 뒤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1년 뒤 미국에서도 정권이 교체되었다. 2008년은 한·미 FTA가 최대 위기를 맞은 시기였다.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이 대통령의 4월 방미에 맞춰 한·미 FTA와 연결돼 있는 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가 광우병 촛불 집회를 불렀다.
2009년 1월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재협상을 요구했다. 노조가 주요 지지기반 중 하나인 민주당 정권으로선 예정된 코스였다. 오바마 당선 직후 한국 국회는 국회 외통위에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하려다 이를 저지하려던 민주당 의원들이 해머와 쇠파이프까지 동원하는 난장판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오바마가 취임 후 지지로 돌아서
2008년 이후 1년여간 난파 위기를 겪은 한·미 FTA는 2009년 말부터 제 궤도에 접어들었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협상을 벌였고, 작년 12월 한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추가 양보를 했다. 오바마의 입장은 이후 '적극 찬성'으로 바뀌었다. 한덕수 주미 대사는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CEO 라운드테이블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새벽 1시에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비준안을 통과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고 했다.
의회 안팎에서 비준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진행됐다. 작년 5월 하원에서는 초당적 모임인 '친무역 코커스'가, 6월에는 '한·미 FTA 워킹 그룹'이 결성됐다. 친한파 인사들인 애덤 스미스 민주당 의원, 데이브 라이커트 공화당 의원 등이 주축이 된 '한·미 FTA 워킹 그룹' 의원들은 무역협정에 회의적인 의원들로 구성된 반FTA 성향의 '하원 무역 워킹그룹'의 조직적 활동에 대응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의회에서 5차례에 걸쳐 초당적인 '한·미 FTA 지지 서한·성명'이 발표된 것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행정부에서는 빌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가장 큰 후원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시절 한·미 FTA 협상을 타결지었던 민주당은 야당이 되자,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해서 "이익의 균형을 깼다"는 이유를 들어 한·미 FTA 반대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