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시대적 과제에 속수무책인 일본 총리들

 [한승주 칼럼] 시대적 과제에 속수무책인 일본 총리들

 

▲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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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메일 인쇄 입력 : 2011.10.24 23:29 / 수정 : 2011.10.25 10:58

미국 추격했던 경제대국 일본, 중국에 GDP 세계2위 내줘
일본 침체는 정치의 실패 탓… 역사문제 청산·FTA 체결 부진
통치 효율화 등 무위로 끝나, '제3의 개국론' 나왔으나 미지수

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1979년 '넘버원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은 당시 일본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국이 됐고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내부문제를 일본에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 책은 당장 일본어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됐고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판매되는 등 큰 충격을 주었다.

'넘버원 일본'이 출간된 후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머지않아 미국을 능가하여 과연 세계 1위국이 되는가 싶었다. 그 후 소련이 와해되고 동·서 냉전이 끝나면서, MIT 교수 레스터 소로 같은 학자는 '맞대결(Head to Head)'이라는 책에서 21세기는 유럽·북미·일본의 3자 경쟁 시대가 될 것임을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 20여년간 그 존재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국제경쟁에서 뒤지기 시작하더니 2010년에는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의 자리마저 중국에 내주게 됐다. 일본은 앞으로도 상대적 쇠퇴를 감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이 경제성장, GDP, 국제적 위상 면에서 특히 중국의 부상과 비교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지난 3월 11일의 3대 재해(대지진, 쓰나미, 원전 사고)는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과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무엇이 일본의 상대적 후퇴를 가져왔는가?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정치와 행정의 개혁이 미흡하고, 기업과 국민이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 침체의 책임을 무엇보다도 정치지도력의 부재(不在) 내지 실패에서 찾는다. 일본의 정치체제는 강력하고 진취적인 지도자를 내놓지 못할 뿐 아니라 총리의 임기도 단명(短命)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고이즈미 총리가 물러난 후 5년 동안 자민당과 민주당 총리 6명이 연달아 들어섰고, 그 중 대부분이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추구했던 통치의 효율화, 관료세력의 축소, 복지제도의 개혁 등은 무위로 끝났고 그들은 인기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물러났다.

일본 정치리더십의 취약성은 주변국과의 역사문제 청산, 주요국들과의 FTA 체결과 관련해서 더욱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일본이 국제적으로 책임 있는 나라로 인정받고 '보통국가'가 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독일과 프랑스가 한 것 같이,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느 총리도 예컨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FTA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이 미국·EU 등과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일본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면서도 정치적 제약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일본의 이러한 상대적 쇠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의 개국(開國)론'까지 들고 나왔다. 일본이 근세에 들어 첫 번째 위기였던 1853~4년 미국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黑船)의 에도만(江戶灣·현 도쿄만) 출현 때는 개국과 근대화로 대응했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는 민주화와 고도 경제성장으로 극복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계속되는 경제침체와 상대적 쇠퇴라는 위기를 외부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개방으로 타개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40년간 일본의 성쇠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훈은 정치가 국가의 발전과 융성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FTA와 관련한 일본의 무기력이 보여 주는 것같이 일본의 정치는 국가발전에 긍정적 요인이 되지 못했다.

일본은 결국 이번의 세 번째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 및 정치 일각에서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인 행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인들은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비교적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경제의 추락, 북핵 문제, 아시아 지역의 안전 및 발전과 관련하여 다방면에서 협력해야만 한다. 따라서 영유권, 과거사 등의 문제가 양국의 협조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가운데 한·일관계의 발전과 일본의 새로운 도약이 가능해질 수 있다.

 

영문버젼..

What We Can Learn from Japan

Han Sung-joo

Harvard University professor Ezra Vogel won critical acclaim for his 1979 book "Japan as Number one: Lessons for America," which analyzed how Japan became the world's most competitive industrial country, thereby suggesting solutions to many problems the U.S. faced. The book was quickly translated into Japanese and became a bestseller there and also in the U.S. and around the world. Since it was published, Japan became the world's No. 2 economy, and there was a lot of trepidation among Americans that it would overtake it. Then the Soviet Union collapsed and the Cold War ended, prompting MIT professor Lester Thurow to predict in his book "Head to Head" that the world would see a three-way competition between Europe, North America and Japan.

But over the last 20 years, Japan's global prowess has weakened as its economy faltered. It ended up ceding its No. 2 status in terms of GDP to China in 2010 and is expected to weaken further. The sense of loss it feels is understandable. Moreover, the March earthquake and tsunami that hit eastern Japan and the ensuing nuclear disaster delivered a strong shock and sense of despair to the Japanese people.

What was the reason behind Japan's weakening economic prowess? There are several reasons such as its increasing aging population, failure in political and bureaucratic reforms, and businesses which were unable to adapt to globalization. But experts cite a lack or failure of political leadership as the main cause of Japan's predicament. Not only has the political establishment failed to produce a strong and charismatic leader, but it has seen prime ministers come and go in recent years.

In 2006, Junichiro Koizumi stepped down and was followed by six people over the next five years. Most of them were unable to exercise effective leadership and failed to gain the public's trust. They were unable to achieve the goals of efficient leadership, small government and welfare reforms, and their waning popularity sealed their political fates.

The main weaknesses of Japan's political leadership are being highlighted in the way it has handled disputes over its past atrocities against its regional neighbors and the signing of free-trade agreements. In order for Japan to be recognized as a globally responsible nation and restore its reputation is to seek forgivingness for its aggression from its closes neighbor South Korea, just as Germany did with France after World War II, and to promote a cooperative relationship. But no Japanese prime minister has even dared to take bold and decisive steps to deal with the former "comfort women" who were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the Japanese military during World War II. While envying South Korea for completing FTAs with the U.S. and European Union, Japan is hesitant to take similar steps due to its political limitations.

To pull Japan out of the doldrums, former prime minister Naoto Kan even tried to implement a so-called "Third Way" that emphasized globalization and political reforms. During Japan's previous national crisis between 1853 to 1854, when the U.S. Navy appeared in front of Edo Bay pressuring Japan to open up to trade, the island nation fought back with modernization. After its defeat in World War II, it recovered through democratization and rapid industrial development. Kan's calculation was to overcome Japan's present predicament by opening the country up further. It remains to be seen what steps prime minister Yoshihiko Noda will take.

What are the lessons taught by Japan? The foremost lesson is that domestic politics must not become a burden to a country's development. As demonstrated by Japan's trouble with FTAs, domestic politics has not been a positive influence on its development.

Japan needs to overcome its third national crisis, and that process could entail a resurgence of nationalism and isolationism. But most Japanese people appear to have relatively open and friendly views of South Korea. The two countries need to cooperate in a wide range of fields, including the economy, North Korea, and Asian security and prosperity. The two countries need to tread delicately in dealing with history and territorial sovereignty. only then can their relations have a bright future.

By former foreign minister Han Sung-joo